『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리딩 가이드 #2 — 개관
하지만 그렇다고 칩시다. 정말로 그랬다고 치죠. 바로 이것이 심리학의 미묘한 지점일 테니, 즉 이런 상황에선 방금까지만 해도 카프카스의 독수리처럼 피에 굶주려 명민함을 발휘하다가 한순간만 지나면 시시껄렁한 두더지처럼 눈먼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는 거죠.
그런데 만일 그가 그렇게까지 피에 굶주리고 냉혹하게 계산적인 인간이라서, 사람을 죽인 뒤에 유일한 목격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확인하러 되돌아갔다면, 어째서 다른 목격자들과 마주칠 위험을 무릅쓰고 그 부상자를 위해 무려 오 분이나 허비를 한단 말입니까? 어째서 손수건을 피에 적셔 가며 그의 머리를 닦아 주기까지 했단 말입니까? 그 손수건이야말로 나중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물건인데 말입니다. 그가 그토록 냉정하고 계산적인 자라면, 같은 공이로 하인의 머리를 몇 번이고 더 내리쳐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고, 목격자에 대한 근심을 아예 없애 버리지 그랬습니까?
또 다른 증거인 이 놋쇠 공이를 바로 거기, 길바닥에 던져 두는데, 그것은 두 여성의 집에서 가져온 것인지라 나중에 그 두 여성이 언제든 이건 자기들 것이다, 이건 자기들 집에서 가져간 것이다, 하고 증언할 게 뻔한 노릇입니다. 더욱이 그 놋쇠 공이는 길바닥에서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즉 정신이 없고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그만 떨어뜨린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흉기를 말 그대로 내던진 것입니다.
12편 「오심」 속 변호인 페튜코비치의 변론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개관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시도했다가 전부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내가 당면한 문제는 ‘분명함’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복잡하고, 언어는 쓰는 순간 ‘분명함’에 갇혀버립니다. 세상은 말하자면 떠다니고 있는 어떤 것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언어로 포집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애초에 모든 것을 고려하는 계산기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개관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부차적이고 삼차적인 것에 불과한 쓰잘데기 없는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해설을 썼지만 그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비견될 정도로 복잡성과 미학을 유지한다면 — 물론 위대한 작가를 흉내 내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서 거의 불가능한 가정이기는 하지만 — 내 글이 읽는 이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원문을 읽으면 될 따름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드미트리는 열정과 감각,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이기심과 육체적 욕망, 스메르자코프는 표도르의 악의가 살아 있는 상징, 조시마는 기독교적 사랑, 신앙, 용서에 각각 대응된다는 식으로, 도표로 아름답고 깔끔하게 정리한 것들을요.
그런 것들을 작성한 사람들이 당연히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또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수많은 ‘증거’들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들어맞는 증거에만 ‘카프카스의 독수리처럼 피에 굶주려 명민함을 발휘하다가’, 그것에 맞지 않는 것들에게는 ‘시시껄렁한 두더지처럼 눈먼 겁쟁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은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네가 작품 열심히 읽었다는 거 알았어. 작품의 내용에 따르면 그런 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런데 사실은 ‘그런 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게 가다 보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그냥 그것에 대해서는 잊었다고 치자고!
누군가는 무한퇴행에 대해서 2단계까지 생각했고, 누구는 5단계까지 생각했다는 식으로 단계를 나누어서 급을 나눌 셈이냐?
그냥 그런 것들은 잊어버린 셈 치고 재미로 설정집을 만든 거니까, 거기에 대해서만 말하자고!”
그것도 나는 매우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최소한 ‘1단계’라도 열어두는 것이 더 맞다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며,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는 삶이 죽음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지미 카 스탠드업 코미디 일부
관객: What do you think about Ticketmast?
Jimmy Carr: Ticketmaster. What do I think about Ticketmaster? I like them.
What’s not to like about Ticketmaster?
관객: As a purchaser?
Jimmy Carr: Yeah.
You can not go to the show.
Ticketmaster always gets a hard time. People say, “It was £400 to see Taylor Swift.” Well, don’t go.
You might object to capitalism and Ticketmaster are a very good example of the capitalist market.
Capitalism is a terrible system apart from all the others.
Bunch of young people seem to have fallen in love with communism again. Communism’s a great idea, wrong species.
The thing about capitalism is it kind of leans into what we are. We’re quite self-interested. It works.
관객: Define communism for me.
Jimmy Carr: Define communism?
관객: Yes.
Jimmy Carr: From each according to their abilities, to each according to their needs.
(박수)
Yeah. It just doesn’t scale.
Everyone is a communist. All of you are communists with your family.
If you’ve got kids, you’re a communist at home. Each according to their needs. You take care of them. Of course you do.
And as things get wide in your local community, you might be a socialist. Try and help everyone out.
And then you get up to nation-state level and you go, “Yeah, those guys.”
There’s always going to be an in-group preference.
I’m sorry, but you human beings [are] unlucky.
The problem with American communism, which is woke, instead of redistributing wealth, they want to redistribute status. And that is a recipe for madness.
Hang on.
Sorry. Some young men looking at me like, “Yeah, great. We’re going to need some dick jokes.” No problem. I’m on it.
I’m going to say some very offensive things in a bit.
사실 나는 상대가 누구건, 무슨 주장을 하건 무조건적으로 반론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그럼 공산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모기에 대해 말합니까? 공산주의는 이타심에 기댄 게 아닙니까?
인간이라서 공산주의가 안 된다면, 인간이라서 자본주의가 안 된다는 것은 왜 의심하지 않죠?
각종 수많은 자본주의의 새치기 권리들은?
애초에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가 덜 적합했다고 누가 판결 내린 겁니까? 사람을 많이 죽여서입니까? 자본주의는 안 죽이나요? 사람을 많이 괴롭혀서였나요? 자본주의는 안 괴롭히나요?
그저 전쟁에 승리했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수많은 정당화 논리에 그대로 복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애초에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은 왜 당연합니까?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 개체수가 줄어들고 환경문제가 줄어들지 않나요?
지미 카는 예수찬양론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구조적으로 보면,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인간다운 삶의 기준이다.
사랑이 결여된 사회는 잘못됐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은 이기심이다.
그러므로 이기심을 활용하는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맞다.
그것과 충돌한 공산주의는 인간에게 맞지 않는다.
이 둘은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물론 페튜코비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의 반론은 그것이 사용하는 방법에 그 스스로가 그대로 당해버리는 문제에 직면해버립니다.
“그러므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무죄입니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온몸에 똥물이 묻었다고 굳이 얼굴에 똥물을 더 바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때에는 나는 소실되는 것들, 왜곡되는 것들, ‘시시껄렁한 두더지가 되어버리는 것들’에 강하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를테면 작품의 해설에서 느끼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시점에서 초월한 자아가 내리는 판정이라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역동성입니다.
이를테면 이반을 ‘회의주의’, 알렉세이를 ‘신앙’, 드미트리를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반드시 틀렸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각 인물은 이름표를 목에 걸고 굳어 있는 박물관의 표본처럼 되어버립니다.
알렉세이가 누군가를 만나기 전과 만난 뒤에 달라지고, 그에게 말을 들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어제는 절대로 믿을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은 믿고, 오늘 목숨을 걸었던 것을 내일은 부정하게 되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
안타깝게도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 읽었으므로 상당 부분 오염되어 있습니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그것을 이해할 모델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만큼만 이해했습니다.
어쩌면 근본부터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나의 해설의 목적은 사실 세상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이 있을 만큼만, 나에게 마음에 드는 만큼만 잘라내어 움직이는 카프카스의 독수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