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제4장. 뜨거운 마음의 고백 — 일화들 속에서
「거기서 나는 흥청망청 놀았어. 아까 아버지는 내가 처녀들을 유혹하는 데 몇천 루블씩 썼다고 했지. 그건 돼지 같은 허깨비야.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실제로 있었던 일들은, 정작 ‘그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어.
내게 돈이란 액세서리야. 영혼의 열기이고, 배경 장치지. 오늘은 어떤 귀부인이 내 여자라면 내일은 길거리 계집애가 그 자리를 대신해. 나는 이쪽도 저쪽도 즐겁게 해줬어. 돈을 한 움큼씩 뿌리고, 음악을 부르고, 떠들고, 집시 여자들을 불렀지. 필요하면 그 여자에게도 돈을 줬어. 여자들은 받거든. 열을 올리며 받아. 그건 인정해야 해. 그리고 만족하고 고마워하지.
귀부인들이 나를 좋아하기도 했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런 일도 있었어. 있었지. 하지만 나는 언제나 뒷골목을 좋아했어. 광장 뒤의 외지고 어두운 골목들 말이야. 거기에는 모험이 있고 뜻밖의 일이 있고, 진흙 속에서 발견되는 자연 그대로의 금덩이가 있지.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야, 아우야.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는 실제로 그런 골목이 없었지만, 도덕적인 의미의 골목은 있었어. 네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나는 방탕을 사랑했어. 방탕의 치욕도 사랑했어. 잔인함도 사랑했지. 내가 빈대가 아니냐, 사악한 벌레가 아니냐? 한마디로 카라마조프지!
한번은 온 도시 사람들이 소풍을 나갔어. 세 마리 말이 끄는 썰매 일곱 대를 타고 갔지. 겨울이었고 어두웠어. 썰매 안에서 나는 근처에 사는 어떤 처녀의 손을 꼭 쥐기 시작했고, 그 아이에게 억지로 입을 맞췄어. 어느 관리의 딸이었지. 가난하고, 사랑스럽고, 온순하고, 저항할 줄 모르는 아이였어. 어둠 속에서 그 아이는 내게 많은 것을 허락했어. 아주 많이.
가엾은 아이는 내가 다음 날 자기를 찾아가 청혼할 거라고 생각했지. 당시에는 나도 꽤 괜찮은 신랑감으로 평가받았거든. 하지만 그 뒤로 나는 그 아이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다섯 달 동안 반마디도.
무도회가 열릴 때면 — 우리 도시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췄으니까 — 나는 홀 한쪽 구석에서 그 아이의 눈이 나를 따라다니는 걸 봤어. 눈 속에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것도 봤지. 온순한 분노의 불꽃이었어. 그 놀이는 내가 내 안에서 길러내고 있던 벌레의 정욕을 즐겁게 해줄 뿐이었어.
다섯 달 뒤 그 아이는 어떤 관리와 결혼해서 도시를 떠났어. 여전히 화가 나 있었고, 어쩌면 여전히 나를 사랑하면서 말이야. 지금은 행복하게 산다고 하더군.
그런데 잘 알아둬. 나는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 아이의 평판을 더럽히지도 않았어. 욕망이 비열하고 비열한 것을 사랑하기는 해도, 나는 불명예스러운 인간은 아니야.
너 얼굴이 붉어지는구나. 눈도 번쩍였어.
이 더러운 이야기는 이 정도면 충분해. 게다가 이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폴 드 콕 식의 꽃송이들에 불과해. 그때도 잔인한 벌레는 이미 자라고 있었고, 내 영혼 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말이야.
아우야, 내게는 이런 기억만 모아도 앨범 한 권이 나와. 하느님께서 그 사랑스러운 여자들에게 건강을 내려주시기를! 나는 관계를 끊을 때에도 싸우지 않고 끝내는 걸 좋아했어. 그리고 한 명도 배신하지 않았고, 한 명도 떠벌리지 않았어.
하지만 됐다. 설마 내가 이런 시시한 쓰레기 이야기를 하려고 너를 여기까지 불러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이제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지. 그리고 내가 네 앞에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놀라지 마.」
「형이 그렇게 말하는 건 제가 얼굴을 붉혔기 때문이에요.」 알료샤가 갑자기 말했다. 「저는 형의 말 때문에, 형이 한 행동 때문에 얼굴을 붉힌 게 아니에요. 저도 형과 똑같기 때문에 붉힌 거예요.」
「네가? 그건 좀 너무 멀리 갔는데.」
「아니에요. 멀리 간 게 아니에요.」 알료샤가 열을 올리며 말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그의 안에 있었던 듯했다. 「계단은 전부 같은 계단이에요. 저는 맨 아래 계단에 있고 형은 위쪽, 한 열세 번째쯤에 있을 뿐이에요. 저는 그렇게 봐요. 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거예요. 완전히 같은 종류예요. 맨 아래 계단에 발을 올린 사람은 결국 반드시 위쪽 계단에도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아예 첫 계단에도 올라가지 않아야겠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올라가지 않는 편이 나아요.」
「너는 그럴 수 있니?」
「아닌 것 같아요.」
「조용히 해, 알료샤. 조용히 해, 사랑하는 녀석아! 너무 감동해서 네 손에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구나. 그 여우 같은 그루셴카는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언젠가 내게 그러더라. 언젠가는 너를 잡아먹어버리겠다고.
됐어, 됐어! 입 다물지.
이제 온갖 더러운 것들, 파리들이 들끓는 타락의 들판에서 내 비극으로 넘어가자. 물론 그것도 파리들, 즉 온갖 비열함으로 더럽혀진 들판이지만.
사실 아버지가 순진한 처녀들을 유혹했다느니 하고 한 말은 거짓말이지만, 내 비극 속에서는 본질적으로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어. 딱 한 번뿐이고, 그마저도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나를 욕한 그 노인은 정작 이 일은 몰라.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 네게 지금 처음 말하는 거야. 물론 이반은 제외하고. 이반은 전부 알아. 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하지만 이반은 무덤이야.」
「이반이 무덤이라고요?」
「그래.」
알료샤는 지극히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 전열대대에서 나는 프라포르시치크라는 하급 장교 계급이었지만, 그래도 사실상 감시받는 사람이나 다름없었어. 마치 유배 온 사람 같았지. 그런데 그 작은 도시는 나를 아주 잘 받아줬어.
나는 돈을 엄청나게 뿌렸고, 사람들은 내가 부자라고 믿었어. 나 자신도 그렇게 믿었지. 하지만 아마 돈 말고도 뭔가 다른 점이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들면서도, 정말로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어.
내 상관인 늙은 중령만은 갑자기 나를 싫어하게 됐어. 계속 트집을 잡았지. 하지만 내게는 뒤를 봐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게다가 도시 전체가 내 편이었으니까 심하게 건드리지는 못했어.
나도 잘못이 있었어. 일부러 그에게 마땅한 존경을 보이지 않았거든. 교만했던 거지.
그 늙고 고집 센 사람은 사실 상당히 괜찮은 인간이었고, 아주 인정 많고 손님 접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아내가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죽었지.
첫 번째 아내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고, 역시 소박한 딸 하나를 남겼어. 내가 거기 있을 당시 그 딸은 스물네 살쯤 된 처녀였고,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의 여동생인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어.
이모는 말없이 순박한 사람이었고, 조카인 중령의 큰딸은 활달하게 순박한 여자였지.
나는 과거를 떠올리면서 사람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걸 좋아해. 아우야, 정말이지 나는 그 아가씨보다 더 사랑스러운 성품을 가진 여자를 본 적이 없어. 이름이 아가피야였어. 생각해 봐, 아가피야 이바노브나!
외모도 러시아식 미인으로 보면 결코 못생기지 않았어. 키가 크고 몸집이 크고 풍만했고, 눈이 아주 아름다웠어. 얼굴은 조금 투박했지만.
청혼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모두 거절했고, 그래도 쾌활함을 잃지 않았어.
나는 그 여자와 가까워졌어. 그런 의미로 말하는 건 아니야. 완전히 순수했어. 그냥 친구로서였지.
나는 여자들과 아주 죄 없이, 순전히 친구로 가까이 지낸 적도 많아. 그 여자에게 얼마나 노골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는지 몰라. 그런데 그 여자는 웃기만 했어.
기억해 둬. 솔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아. 게다가 그 여자는 처녀였으니, 그 점이 나는 특히 재미있었지.
그리고 또 하나. 그 여자를 흔히 말하는 ‘아가씨’라고 부르기는 어려웠어. 이모와 함께 아버지 집에서 살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교계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지 않았거든.
모두가 그 여자를 사랑했고, 모두가 그 여자를 필요로 했어. 재봉 솜씨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이야. 재능이 있었어. 일을 해주고도 돈을 요구하지 않고 호의로 해주었지만, 누가 돈을 선물하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중령은 달랐어. 중령은 그 지방에서 손꼽히는 중요 인물이었지.
아주 넉넉하게 살면서 도시 전체를 집으로 불러들였어. 만찬도 열고 무도회도 열었지.
내가 도착해 대대에 들어갔을 무렵, 온 도시가 곧 중령의 둘째 딸이 수도에서 찾아온다는 이야기로 떠들썩했어. 미녀 중의 미녀인데, 수도의 귀족적인 여자학교를 막 졸업했다고 했지.
그 둘째 딸이 바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야. 중령의 두 번째 아내에게서 난 딸이지.
이미 죽은 그 두 번째 아내는 이름난 고위 장군 집안 출신이었어. 하지만 내가 확실한 곳에서 들은 바로는 그 여자도 중령에게 돈은 한 푼도 가져오지 않았어. 친척과 인맥만 있었던 셈이지. 미래에 뭔가 기대할 것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현금은 없었어.
그런데 그 기숙학교 출신 아가씨가 — 영원히 살러 온 것이 아니라 잠깐 방문하러 온 거였어 — 도착하자 우리 작은 도시 전체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떠들썩해졌어.
가장 높은 신분의 부인들, ‘각하’라고 불릴 만한 부인 둘과 대령 부인 한 명, 그리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나머지 모든 여자들이 즉시 그 아이를 끌어안았어. 즐겁게 해주려고 난리가 났지.
무도회와 소풍에서는 여왕이 되었고, 어떤 가정교사들을 돕기 위한 자선 행사에서는 살아 있는 그림극까지 꾸몄어.
나는 가만히 있었어. 계속 흥청거리며 놀았지. 바로 그때 내가 사고 하나를 크게 쳐서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지기도 했어.
한번은 포대 지휘관 집에서 그 여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걸 봤어. 하지만 나는 다가가지 않았지. ‘난 너 같은 여자와 알고 지낼 생각 없어’ 하는 태도를 보였어.
조금 뒤 다른 저녁 모임에서야 다가가 말을 걸었어.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고 입술을 경멸스럽게 오므렸어.
나는 생각했지.
‘기다려라. 복수해주마.’
당시 나는 웬만한 일에서는 정말 지독한 꼴통이었고, 나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어.
무엇보다 나는 ‘카첸카’가 그저 순진한 기숙학교 아가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이 높고, 실제로 덕이 있는 사람이었지. 무엇보다 머리가 좋고 교육을 받은 여자였어. 그런데 내게는 그 둘 다 없었어.
내가 그 여자에게 청혼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전혀.
그저 복수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인데 그 여자가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나는 계속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렸지. 결국 중령이 나를 사흘 동안 영창에 집어넣었어.
마침 그 무렵 아버지가 내게 6,000루블을 보내왔어. 내가 그에게 모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문서를 보낸 뒤였지. 말하자면 ‘이제 서로 계산은 끝났고 앞으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어.
그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아우야,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도, 심지어 바로 최근까지도, 어쩌면 오늘까지도 아버지와 나 사이의 그 모든 돈 문제를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그건 나중 문제야.
그때 그 6,000루블을 받고 난 뒤, 친구가 보내온 짧은 편지 하나를 통해 내게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어.
우리 중령에 대해 위에서 좋지 않게 보고 있고, 장부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며, 한마디로 그의 적들이 그를 잡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였지.
실제로 사단장이 찾아와서 중령을 호되게 질책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역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지.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세세히 설명하지는 않을게. 정말로 그에게 적들이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도시 사람들의 태도가 중령과 그 가족에게 아주 차갑게 변했어. 사람들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갔지.
그때 내가 첫 번째 수를 둔 거야.
늘 친구처럼 지내던 아가피야 이바노브나를 만나 이렇게 말했어.
‘당신 아버지의 국고금에서 4,500루블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얼마 전 장군님이 왔을 때는 전부 그대로 있었어요.’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아가피야는 몹시 놀랐어.
‘제발 겁주지 마세요.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으셨어요?’
나는 말했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에서는 내가 무덤 같은 인간이라는 걸 당신도 알잖습니까. 다만 혹시 모르니까 한 가지 덧붙이려는 겁니다. 아버님에게 그 4,500루블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재판을 받고, 늙은 나이에 군인으로 강등되어 끌려가게 되거든, 그때는 차라리 당신네 기숙학교 아가씨를 몰래 내게 보내십시오. 마침 내게 돈이 왔으니까, 그 애에게 4,500루블쯤은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비밀은 신성하게 지켜드리지요.’
그러자 아가피야가 말했어.
‘아, 당신 정말 비열한 사람이군요!’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
‘당신 정말 사악하고 비열해요! 어떻게 감히!’
그 여자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가버렸어. 나는 뒤에서 다시 한번 소리쳤지.
비밀은 신성하고 절대로 깨지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 모든 사건에서 아가피야와 그 이모, 두 여자는 정말 순결한 천사 같은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그 교만한 여동생 카챠를 진심으로 숭배했고, 그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거의 하녀처럼 살았지.
그런데 아가피야는 바로 그 이야기를, 그러니까 나와 나눈 대화를 카챠에게 전했어. 나는 나중에 그 사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모두 알게 됐지.
숨기지 않은 거야.
그리고 물론 내가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어.
그때 새 소령이 대대를 인수하러 왔어.
인수 작업이 시작됐지.
늙은 중령은 갑자기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했고, 이틀 동안 집에 틀어박혀 국고금을 넘기지 않았어. 우리 군의관 크라브첸코는 그가 정말로 아팠다고 주장했지.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아주 정확히 알고 있던 사실이 있었어.
상부에서 국고금을 검사하고 간 뒤면, 벌써 4년 동안 매번 그 돈이 잠시 사라지곤 했다는 거야.
중령은 그 돈을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에게 빌려줬어. 우리 도시의 상인 트리포노프라는 늙은 홀아비였지. 금테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인간이었어.
그 상인은 장터에 가서 그 돈으로 필요한 거래를 한 다음, 돌아오면 중령에게 돈을 온전히 돌려줬어. 그리고 장터에서 선물도 가져왔지. 선물에다가 약간의 이자까지 붙여서.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
나는 당시 트리포노프의 어린 아들한테서 우연히 이 이야기를 전부 들었어. 그 애는 침이나 질질 흘리는 십대였고, 트리포노프의 아들이자 상속자였으며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타락한 어린놈이었지.
이번에는 트리포노프가 장터에서 돌아오고도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어.
중령이 달려가자 트리포노프는 이렇게 대답했지.
‘나는 당신에게서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받을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우리 중령은 집에 틀어박혀 머리에 수건을 감고 있었어. 집안의 세 여자는 그의 정수리에 얼음을 대주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당번병 하나가 장부와 명령서를 가지고 들이닥쳤어.
‘국고금을 넘기십시오. 즉시. 지금 당장. 두 시간 안에.’
중령은 거기에 서명했어. 나는 나중에 그 장부에 있는 서명을 직접 봤어.
그는 일어나서 군복으로 갈아입겠다고 말한 뒤 침실로 달려갔어.
자기 쌍발 사냥총을 꺼내 장전하고, 군용 탄환을 넣었어. 오른발의 장화를 벗고, 총구를 자기 가슴에 대고, 발로 방아쇠를 찾기 시작했지.
그런데 아가피야가 이미 뭔가를 의심하고 있었어. 내가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거든.
몰래 따라가서 제때 그 광경을 발견했어.
방으로 뛰어들어 뒤에서 아버지를 끌어안았고, 총은 위쪽 천장을 향해 발사됐어.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
사람들이 달려와 중령을 붙잡고 총을 빼앗고 양팔을 잡았어.
나는 나중에 그 모든 일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었지.
그때 나는 집에 있었어.
해가 저물 무렵이었고,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지. 옷도 입고 머리도 빗고 손수건에는 향수까지 뿌리고 모자를 집어 들었어.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
내 방 안에, 바로 내 앞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서 있는 거야.
이상한 일이란 게 있지.
그때 거리에서 그 여자가 내 집으로 들어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어. 그래서 도시에는 그 일이 그대로 묻혀버렸지.
나는 아주 늙은 관리 여성 둘이 사는 집에 방을 빌려 살고 있었어. 두 사람은 내 시중도 들어줬는데 아주 점잖은 여자들이었고, 모든 일에서 내 말을 따랐어. 나중에 내가 입을 다물라고 하자 둘 다 주철 기둥처럼 침묵했지.
물론 나는 즉시 모든 것을 이해했어.
카체리나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똑바로 바라봤어.
검은 눈은 단호했고, 심지어 도전적으로 보였지. 하지만 입술과 그 주변을 보니 망설임이 있었어.
‘언니에게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여기 와서 돈을 받으러 오면 4,500루블을 주겠다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왔습니다…… 돈을 주세요!’
더 이상 버티지 못했어.
숨이 막히고 겁에 질렸고 목소리가 끊겼지. 입술 끝과 입가의 선이 떨리기 시작했어.
알료샤, 듣고 있니, 아니면 자고 있니?」
「미챠 형, 형은 전부 사실대로 말할 거라는 걸 알아요.」 알료샤가 흥분해서 말했다.
「바로 사실대로 말하지. 전부 사실대로 말한다면 이렇게 된 거야. 나 자신도 봐주지 않을게.
첫 번째 생각은 카라마조프적인 생각이었어.
한번은 말이야, 아우야, 내가 팔랑가라는 독벌레에게 물린 적이 있어. 그 뒤로 2주 동안 열병을 앓았지.
그런데 그때도 갑자기 바로 심장을 물린 것 같았어. 그 사악한 벌레, 알겠니?
나는 그 여자를 눈으로 훑어봤어.
너도 카체리나를 봤지? 아름답잖아.
하지만 그 순간 그 여자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얼굴 때문이 아니었어.
그 순간 그녀가 아름다웠던 건 그녀는 고결한 인간이고 나는 비열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야.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위해 보여주는 위대한 관대함과 희생의 장엄함 속에 서 있었고, 나는 빈대였어.
그리고 그 여자 전체가 나, 이 빈대와 비열한 인간에게 달려 있었어. 완전히. 영혼도 몸도 모두.
상황은 완성되어 있었어.
솔직히 말하지. 그 생각, 그 독벌레 같은 생각이 내 심장을 얼마나 사로잡았는지, 갈망만으로 심장이 터져 피를 흘릴 것 같았어.
이제는 싸움 따위가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았지.
그냥 빈대처럼, 사악한 타란툴라처럼 행동하면 되는 거였어. 아무런 연민 없이.
숨이 멎을 정도였지.
들어봐.
물론 나는 다음 날 바로 찾아가 청혼했을 거야. 그렇게 해서 모든 일을 가장 고결한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했을 거야.
나는 욕망은 비열해도 명예는 아는 인간이니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어.
‘하지만 내일 네가 청혼하러 가도 저런 여자는 널 만나러 나오지도 않을걸. 마부에게 널 마당 밖으로 쫓아내라고 하겠지. 온 도시에 소문을 퍼뜨려봐라, 난 네가 무섭지 않다고 하면서.’
나는 그 여자를 바라봤어.
그 목소리는 틀리지 않았어.
분명 그렇게 될 거였지.
지금 그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어. 나는 목덜미를 잡혀 쫓겨날 거야.
갑자기 분노가 끓어올랐고, 정말 비열하고 돼지 같고 장사꾼 같은 수작을 부리고 싶어졌어.
비웃는 눈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순간, 장사꾼만이 낼 수 있는 말투로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4,000루블이라고요? 아이고, 그건 농담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아가씨께서 너무 순진하게 그대로 믿으셨군요. 200루블쯤이라면 나도 기꺼이, 즐겁게 드릴 수 있습니다만, 4,000루블은 아가씨, 이런 경솔한 일에 집어던질 만한 돈은 아니지요. 괜히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봐.
그렇게 하면 나는 물론 모든 것을 잃겠지. 그 여자는 도망쳐버릴 거야.
하지만 얼마나 지옥 같고, 얼마나 복수다운 일이겠어!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모든 것을 잃을 가치가 있을 것 같았어.
그 뒤로 평생 후회하면서 울부짖게 되더라도 상관없었어. 당장 그 수작을 한번 부려보기만 하면!
믿겠니?
나는 어떤 여자에게도 그런 적이 없었어.
어떤 여자에게도 그런 순간에 증오를 품고 바라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십자가를 걸고 맹세하지. 나는 그때 이 여자를 3초인지 5초인지 정말 끔찍한 증오를 품고 바라봤어.
사랑까지, 가장 미친 사랑까지도 단 한 올의 머리카락만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바로 그 증오로 말이야.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얼어붙은 유리에 이마를 댔어.
얼음이 불처럼 이마를 태우던 게 기억나.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어. 걱정하지 마.
돌아서서 탁자로 가 서랍을 열고 5,000루블짜리 5퍼센트 무기명 증권을 꺼냈어. 프랑스어 사전 안에 넣어두었던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보여주고, 접어서 그녀에게 건넸어.
그리고 직접 현관 쪽 문을 열었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했지.
정말이지 가장 공손하고, 가장 마음을 꿰뚫는 듯한 절이었다고 믿어도 돼.
그 여자는 온몸을 떨었어.
나를 1초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끔찍할 정도로 창백해졌어. 식탁보처럼 새하얘졌지.
그러더니 갑자기,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충동적으로가 아니라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깊고 조용하게 몸을 숙였어.
내 발 앞까지.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기숙학교에서 배운 인사가 아니라 러시아식 큰절이었어!
그리고 벌떡 일어나 달아났지.
그 여자가 나가고 난 뒤 나는 군도를 차고 있었어.
칼을 뽑아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찔러버리려고 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물론 지독하게 바보 같은 짓이지.
아마 황홀감 때문이었을 거야.
어떤 황홀감 때문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겠니?
하지만 나는 찌르지 않았어.
칼날에 입을 맞추고 다시 칼집에 넣었을 뿐이지.
사실 이 이야기는 네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어.
게다가 지금 내가 그때의 모든 내적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을 좀 칭찬하려고 이야기를 조금 늘여놓은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됐어. 그래도 좋아.
인간의 마음을 염탐하는 놈들은 전부 악마나 잡아가라고 해!
이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와 있었던 옛 ‘사건’의 전부야.
그러니까 이제 이 사건을 아는 건 이반 형제와 너뿐이야. 오직 둘뿐이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분한 채 한두 걸음을 걸었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앉았다.
하지만 전에 앉았던 자리에는 앉지 않고 반대편 벽의 벤치로 옮겨 앉았기 때문에, 알료샤도 몸 전체를 돌려 그를 바라보아야 했다.
제3편 제5장. 뜨거운 마음의 고백 — 거꾸로
「이제,」 알료샤가 말했다. 「이 일의 전반부는 알겠어요.」
「전반부는 이해한 거지. 그건 드라마고, 저쪽에서 일어났어. 하지만 후반부는 비극이고, 여기서 일어나게 될 거야.」
「후반부는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는? 나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니?」
「잠깐만요, 드미트리 형. 여기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형은 약혼자잖아요? 지금도 약혼자죠?」
「그때 바로 약혼자가 된 건 아니야. 그 사건에서 석 달이나 지난 뒤였어.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지. 사건은 소진됐고 끝났다. 후속편은 없을 거라고.
찾아가 청혼하는 건 비열한 짓처럼 느껴졌어.
그 여자도 우리 도시에서 그 뒤로 여섯 주를 더 지냈지만, 자기 쪽에서는 단 한마디의 기별도 보내지 않았어.
딱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그 여자가 내 방에 찾아왔던 다음 날, 그 집 하녀가 내게 슬쩍 들어오더니 아무 말 없이 봉투 하나를 건넸어.
봉투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어.
열어보니 5,000루블짜리 증권을 처분하고 남은 돈이었지.
필요했던 것은 4,500루블뿐이었고, 5,000루블짜리 증권을 팔면서 200루블이 조금 넘는 손실이 생겼어.
그래서 내게 돌려보낸 돈은 260루블쯤이었던 것 같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아.
돈만 들어 있었어.
쪽지도 없고, 한마디도 없고, 설명도 없었지.
나는 혹시 봉투 어디에 연필로 무슨 표시라도 했나 하고 찾아봤어.
아무것도 없었어!
그동안 나는 내게 남아 있던 돈으로 다시 흥청거리며 놀았고, 결국 새로 온 소령이 나를 꾸짖어야 할 정도까지 갔지.
한편 중령은 국고금을 무사히 넘겼어.
모두가 놀랐지. 아무도 그 돈이 아직 온전히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돈을 넘기고 난 뒤 중령은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어. 한 3주 누워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뇌연화가 와서 닷새 만에 죽었어.
아직 퇴역 명령도 정식으로 받지 못한 상태라 군의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렀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와 언니, 이모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열흘쯤 지난 뒤 모스크바로 떠났어.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 바로 떠나는 그날 — 나는 그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배웅하지도 않았어 — 아주 작은 파란색 봉투 하나를 받았어.
안에는 레이스 무늬가 있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고, 연필로 딱 한 줄만 쓰여 있었지.
‘편지를 쓰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K.’
그게 전부였어.
이제 두어 마디로 설명해주지.
모스크바에서 그 집안의 운명은 번개처럼 빠르게, 아라비아 동화처럼 뜻밖에 뒤집혔어.
카체리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그 장군 미망인이 갑자기 자기의 가장 가까운 상속자 둘, 가장 가까운 조카딸 둘을 동시에 잃었어.
둘 다 같은 주에 천연두로 죽었지.
큰 충격을 받은 노부인은 카챠를 친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원의 별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겼어.
그 아이를 끌어안고 즉시 유언장을 카챠에게 유리하도록 고쳐버렸지.
그건 미래에 받을 재산이고, 당장은 직접 현금으로 80,000루블을 줬어.
‘자, 이게 네 지참금이다. 마음대로 써라.’
히스테리 기질이 있는 여자였어.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내가 직접 관찰했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우편으로 4,500루블이 내게 왔어.
물론 나는 말도 못 할 만큼 당황했고 놀랐지.
그리고 사흘 뒤 약속했던 편지가 왔어.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어.
항상 가지고 다니고, 죽을 때도 가지고 죽을 거야.
보여줄까?
꼭 읽어봐.
그 편지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신부로 내놓았어.
스스로 자신을 내게 바친 거야.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
‘미친 듯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제 남편이 되어주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당신을 구속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가구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밟고 걷는 양탄자가 되겠습니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신 자신으로부터 당신을 구하고 싶습니다……’
알료샤.
나는 이런 문장들을 내 비열한 말과 내 비열한 말투로 다시 말할 자격조차 없어. 평생 고치지 못한 이 비열한 말투로 말이야!
그 편지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계속 나를 찔러왔어.
내가 지금 편하다고 생각하니?
오늘 내가 편하다고 생각해?
당시 나는 즉시 답장을 썼어. 직접 모스크바에 갈 수는 없었거든.
울면서 썼지.
그런데 평생 부끄러워할 일이 하나 있어.
그 여자가 이제 부자가 되었고 지참금도 있는 반면 나는 가난한 무지렁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써버렸어.
돈 이야기를 한 거야!
그건 내가 꾹 눌러 삼켰어야 했어.
그런데 펜 끝에서 튀어나와버렸지.
그리고 바로 그때 즉시 모스크바의 이반에게도 편지를 썼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설명했지.
여섯 장짜리 편지였어.
그리고 이반을 그 여자에게 보냈어.
왜 그렇게 보니?
왜 나를 그렇게 바라봐?
그래.
이반은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어.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나는 그걸 알아.
너희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바보 같은 짓을 한 거겠지.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바보 같은 짓 하나가 지금 우리 모두를 구원하게 될지도 몰라!
우우!
그 여자가 이반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얼마나 존경하는지 보이지 않니?
우리 둘을 비교하고 나서, 게다가 여기서 벌어진 그 모든 일까지 겪고 나서도, 그 여자가 나 같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겠니?」
「저는 오히려 그분이 이반 형 같은 사람이 아니라 드미트리 형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고 확신해요.」
「그 여자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덕행을 사랑하는 거야.」
그 말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입에서 무심코, 그러나 거의 악의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웃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눈이 번쩍였고, 얼굴 전체가 붉어지더니 주먹으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맹세한다, 알료샤!」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한 끔찍하고 진실한 분노 속에서 외쳤다.
「믿든 믿지 않든, 하느님이 거룩하시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것을 걸고 맹세하겠다.
방금 내가 그 여자의 고귀한 감정을 비웃기는 했지만, 내 영혼이 그 여자보다 백만 배는 하찮다는 걸 나는 알아.
그리고 그 여자의 가장 고귀한 감정들은 하늘의 천사만큼이나 진실하다는 것도 알아!
바로 그게 비극이야.
내가 그것을 확실하게 안다는 게 말이야.
사람이 조금 과장해서 연설조로 말하면 뭐가 어때서?
나도 그러잖아?
그런데도 나는 진심이야. 정말로 진심이라고.
그리고 이반 말이야.
그 정도의 지성을 가진 이반이 지금 이 자연의 질서를 얼마나 저주하고 있을지 나는 이해할 수 있어!
대체 누구에게, 무엇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는지를 보라고.
괴물 같은 인간에게 주어졌어.
약혼자가 된 뒤에도, 모두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데도 난동과 방탕을 참지 못한 인간에게!
그것도 자기 약혼녀가 눈앞에 있는데!
나 같은 인간이 선택되고 이반은 버림받은 거야.
왜?
그 처녀가 감사하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 삶과 자기 운명을 억지로 짓밟아 바치려고 하기 때문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반에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이반 역시 내게 이 일에 대해 반마디도, 암시조차도 한 적이 없고.
하지만 운명은 이루어질 거야.
가치 있는 인간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가치 없는 인간은 영원히 자기 뒷골목으로 사라지는 거야.
자기에게 어울리는 더러운 뒷골목, 자기가 사랑하는 뒷골목으로.
그리고 거기서 진흙과 악취 속에 자진해서, 즐거워하면서 빠져 죽겠지.
뭔가 말을 너무 지껄였군.
내 말들은 전부 닳아빠져서 아무렇게나 집어넣는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정한 대로 될 거야.
나는 뒷골목에서 익사하고, 그 여자는 이반과 결혼할 거야.」
「형, 잠깐만요.」
알료샤가 다시 몹시 불안해하며 끼어들었다.
「형이 아직 설명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어요. 형은 약혼자잖아요. 여전히 약혼자인데, 약혼녀가 원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관계를 끊겠다는 거예요?」
「나는 약혼자야.
정식으로, 축복까지 받은 약혼자지.
내가 모스크바로 간 뒤 모든 것이 격식을 갖춰 이루어졌어. 성화상 앞에서 축복도 받고, 최고로 번듯하게.
그 장군 미망인이 직접 축복했고 — 믿겠니? — 카챠에게 축하까지 했어.
‘잘 골랐다. 나는 저 남자를 꿰뚫어 볼 수 있어.’
그런데 믿겠니, 그 여자는 이반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축하도 해주지 않았어.
모스크바에서 나도 카챠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전부 이야기했지.
고결하게, 정확하게, 솔직하게.
그 여자는 전부 들었어.
사랑스러운 당혹도 있었고,
다정한 말들도 있었지……
물론 자존심 강한 말들도 있었어.
그때 그녀는 내게 반드시 갱생하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받아냈어.
나는 약속했지.
그런데 이제……」
「그런데요?」
「그래서 오늘 내가 너를 불러서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바로 오늘이라는 날짜를 기억해둬!
오늘 너를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에게 보내려고.
그것도 역시 오늘 안에.
그리고……」
「그리고요?」
「내가 다시는 그 여자에게 가지 않을 거라고 전해.
내가 인사를 전하더라고 말해.」
「그게 가능하기나 해요?」
「그러니까 불가능하니까 내가 직접 가지 않고 너를 대신 보내는 거지.
내가 어떻게 직접 그 여자한테 그런 말을 하겠어?」
「그러면 형은 어디로 갈 건데요?」
「뒷골목으로.」
「그루셴카에게 간다는 거군요!」
알료샤가 손뼉을 치듯 두 손을 들며 슬프게 외쳤다.
「라키친이 정말 사실을 말한 거예요? 저는 형이 그냥 한동안 그 여자에게 다니다가 끝낸 줄 알았어요.」
「약혼자가 다른 여자한테 다닌다고?
그게 가능하겠니?
게다가 그런 약혼녀를 두고, 사람들 눈앞에서?
나에게도 명예라는 게 있어.
내가 그루셴카에게 다니기 시작한 순간 나는 곧바로 약혼자이기를 그만두었고 명예로운 인간이기를 그만두었어.
나도 그것쯤은 알아.
왜 그렇게 보니?
사실 처음에는 그 여자를 때리러 간 거야.
나는 확실한 사실을 알아냈어. 지금도 확실히 알아.
아버지의 대리인이던 그 참모대위가 나에 대한 약속어음 하나를 그루셴카에게 넘겨줬어.
그 여자가 나한테서 돈을 받아내도록 말이야.
나를 얌전하게 만들고 일을 끝내도록 겁을 주려던 거지.
그래서 나는 그루셴카를 때리러 갔어.
그 전에도 멀리서 잠깐 본 적은 있었어.
처음 보면 사람을 압도하는 여자는 아니야.
그 여자를 돌봐주던 늙은 상인 이야기도 알고 있었어. 지금은 병이 들어 몸져누워 있지만 그래도 그루셴카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길 거라는 것도.
그루셴카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돈을 벌고, 악독한 이자로 빌려주고, 교활하고, 인정 없는 여자라는 것도.
그래서 때리러 갔지.
그런데 그 여자한테 가서 그대로 눌러앉아버렸어.
천둥이 쳤어.
역병이 덮친 거야.
나는 감염됐고 지금도 감염되어 있어.
모든 것은 이제 끝났다는 걸 알아.
앞으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시간의 순환은 완성됐어.
내 이야기는 그거야.
그런데 바로 그때,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빈털터리였던 내 주머니에 갑자기 3,000루블이 들어 있었어.
나는 그루셴카와 여기서 모크로예로 갔지.
여기서 스물다섯 베르스타 떨어진 곳이야.
거기로 집시 남자들과 여자들도 불러들이고 샴페인도 가져왔어.
그곳의 남자들을 전부 샴페인에 취하게 했고, 여자들도, 처녀들도 전부 취하게 만들었어.
돈을 몇천씩 내던졌지.
사흘 뒤에는 완전한 빈털터리였어.
그래도 매는 매였지.
그런 매가 뭔가를 얻었을 것 같아?
그 여자는 그런 건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았어.
내가 말했지. 중요한 건 그 곡선이라고.
그루셴카, 그 요망한 여자에게는 몸에 어떤 하나의 곡선이 있어.
그 곡선은 다리에까지 나타나고, 심지어 왼발의 새끼발가락에까지 울려 퍼져.
나는 그걸 봤고 입을 맞췄어.
하지만 그것뿐이야.
맹세해!
그 여자가 말했지.
‘원하면 당신과 결혼할 수도 있어요. 어차피 당신은 빈털터리잖아요. 나를 때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전부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해요. 그러면 어쩌면 결혼해줄지도 모르죠.’
그러고는 웃었어.
지금도 웃고 있고!」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거의 격분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럼 형은 정말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
「그 여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원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곁에 남겠어.
그 집 마당지기가 되어 있을 거야.
너…… 너 말이야, 알료샤……」
그는 갑자기 알료샤 앞에서 멈춰 서더니 양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너 같은 순진한 아이가 알고 있니?
이 모든 게 헛소리라는 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걸!
왜냐하면 여기에는 비극이 있기 때문이야!
알렉세이, 알아둬.
나는 비열한 인간일 수 있어.
내 욕망은 비열하고 타락했을 수 있어.
하지만 도둑은 —
주머니에서 훔치는 도둑, 남의 현관에서 슬쩍 훔쳐가는 좀도둑은 —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절대로 될 수 없어.
그런데 이제 알아둬라.
나는 바로 그 좀도둑이야.
나는 주머니와 현관에서 훔치는 도둑이야!
내가 그루셴카를 때리러 가기 바로 전날 아침, 아니 바로 그날 아침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나를 불렀어.
엄청난 비밀이라면서, 당분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 왜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 여자에게는 그럴 필요가 있었겠지.
그리고 내게 주도로 가서 그곳 우체국에서 3,000루블을 모스크바에 있는 아가피야 이바노브나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어.
굳이 주도에 가서 보내라는 건 여기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어.
바로 그 3,000루블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그때 그루셴카에게 간 거야.
그리고 그 돈으로 모크로예에도 갔어.
그 뒤 나는 주도에 갔다 온 척했어.
그런데 우편 영수증은 보여주지 않았지.
돈을 보냈다고 말하고 영수증은 나중에 가져오겠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까지도 안 가져왔어.
깜빡했습니다, 나리!
자, 이제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자.
네가 오늘 그 여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해.
‘형이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묻겠지.
‘돈은요?’
그래도 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거야.
‘그 사람은 비열한 호색한입니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비열한 인간입니다. 그때 당신의 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짐승처럼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서 써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다음에는 이렇게 덧붙일 수 있었겠지.
‘그러나 그는 도둑은 아닙니다. 여기 당신의 3,000루블이 있습니다. 돌려보냈습니다. 직접 아가피야 이바노브나에게 보내십시오. 그리고 형이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여자가 갑자기 이렇게 묻는 거야.
‘그런데 돈은 어디 있나요?’」
「미챠 형, 형은 불행해요. 맞아요! 하지만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한 건 아니에요. 절망 때문에 자신을 죽이지 마세요. 제발 자신을 죽이지 마세요!」
「내가 3,000루블을 마련해서 돌려주지 못하면 총으로 쏴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문제는 바로 그거야.
나는 안 쏴.
지금은 그럴 힘이 없어.
나중에는 어쩌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루셴카에게 갈 거야……
에라, 될 대로 돼라!」
「그 여자에게 가서는요?」
「그 여자의 남편이 될 거야.
배우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면 말이지.
그런데 그 여자의 애인이 찾아오면 나는 다른 방으로 물러날 거야.
그 여자의 친구들이 신고 온 더러운 덧신을 닦고, 사모바르에 불을 지피고, 심부름이나 하겠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전부 이해할 거예요.」
알료샤가 갑자기 엄숙하게 말했다.
「이 모든 슬픔의 깊이를 전부 이해하고 받아들일 거예요. 그분에게는 아주 높은 지성이 있으니까요.
형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분 스스로 알게 될 거예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할걸.」
미챠가 이를 드러내듯 웃었다.
「아우야, 여기에는 어떤 여자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
그런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니?」
「뭔데요?」
「3,000루블을 그 여자에게 돌려주는 거야.」
「그 돈을 어디서 구해요?
들어봐요. 제게 2,000루블이 있어요. 이반 형도 1,000루블은 줄 거예요.
그러면 3,000이잖아요.
그걸 받아서 돌려줘요.」
「그런데 네 3,000루블이 언제 내 손에 들어오는데?
너는 아직 미성년자이기까지 하잖아.
그리고 반드시, 반드시 오늘 그 여자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해.
돈이 있든 없든 오늘 해야 해.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일이 그런 지점까지 와버렸어.
내일이면 이미 늦어.
늦다고.
나는 너를 아버지에게 보낼 거야.」
「아버지에게요?」
「그래.
그 여자에게 가기 전에 먼저 아버지에게 가.
아버지에게 3,000루블이 있으니까, 그 돈을 달라고 해.」
「하지만 미챠 형, 아버지는 안 줄 거예요.」
「주기야 하겠냐.
안 준다는 걸 나도 알아.
알렉세이, 너는 절망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니?」
「알아요.」
「들어봐.
법적으로는 아버지가 내게 아무것도 빚지고 있지 않아.
나는 이미 받을 것을 전부 받아갔어.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내게 빚진 게 있잖아.
그렇지 않니?
그 사람은 우리 어머니의 28,000루블을 밑천으로 시작해서 100,000루블을 만들었잖아.
그 28,000 가운데 고작 3,000만.
딱 3,000만 내게 주면 돼.
그러면 내 영혼을 지옥에서 끌어내는 거야.
그리고 그 일은 아버지가 저지른 수많은 죄를 갚는 것으로 계산될 거야!
내가 이 3,000루블을 받으면 —
엄숙히 약속하지 —
모든 걸 끝내겠어.
그러면 그는 앞으로 내 소식을 다시는 듣지 않을 거야.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될 기회를 주는 거야.
그에게 말해.
하느님 자신이 바로 이 기회를 그에게 보내는 거라고.」
사건 정리
드미트리는 방탕을 사랑함. 방탕의 치욕도 사랑함. 빈대 벌레임. = 카라마조프
드미트리가 관리의 딸을 갖고 놈. 벌레의 정욕이 채워져서 흡족해함.
관리의 딸이 다른 인간에게 시집감. 드미트리는 자신에게 화나 있으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함.
드미트리는 관리의 딸과 있었던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고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김.
중령과 드미트리가 사이가 좋지 않음.
카체리나(중령의 딸)가 옴.
카체리나는 현재 드미트리 경멸 중.
중령이 공금 횡령 문제로 위기에 빠짐.
드미트리가 카체리나에게 돈을 주겠다고 제안.
드미트리의 생각: 카체리나는 아버지를 위해 고결한 희생을 하러 왔는데, 자신은 빈대 상태임.
11-1. 드미트리의 바리안트 1: 점잖게 청혼한다. 명예를 살리고 빈대 충족.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안 함.
근데 생각해보니 다음 날 카체리나가 곧바로 청혼 거절해버릴 것 같음.
11-2. 드미트리의 바리안트 2: 4000루블은 무슨소리냐며 카체리나를 곤란하게 함.
드미트리가 그 상태에서 강렬한 증오를 갖고 카체리나를 바라봄. 사랑과 한 끗 차이라고 스스로가 말하지만 증오라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음.
순순히 돈을 줌. 수수료까지 고려해서 5000을.
카체리나가 깊숙이 절을 함.
드미트리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데, 그것을 황홀감이라고 표현함.
카체리나가 8만이 생기고, 드미트리에게 돈을 돌려주고 편지를 보내며 영원히 사랑할 것이며 양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함.
드미트리는 자신의 비열함을 인지하고, 고통을 느끼며 편지를 썼는데, 돈 얘기를 했다는 점을 아주 강렬하게 기억하고 후회함.
드미트리가 이반을 전달꾼으로 보냈는데 이반이 카체리나에게 사랑에 빠짐.
드미트리는 이반을 강하게 질투하며, 카체리나는 드미트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덕행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함.
19-1. 갑자기 자신의 영혼이 카체리나보다 백만 배는 하찮은 거라고 말함.
드미트리는 알렉세이에게 카체리나와 관계를 끝낼 것이라는 통보를 하라고 시킴.
드미트리는 그루셴카에 사랑에 빠짐. 왼쪽 발, 심지어 새끼 발가락에도 있는 기운 때문에.
그루셴카는 드미트리에게 비굴한 복종을 요구함.
드미트리는 카체리나가 갑자기 드미트리에게 송금 심부름을 시킨 3000으로 모크로예에서 그루셴카와 놀아나는 데 썼음.
24-1. 드미트리의 상상 시퀀스 1: 카체리나가 돈에 대해서 묻는다. 그때 대답.
‘저열한 호색한이라서 다 썼습니다.’
24-2. 드미트리의 상상 시퀀스 2: 이렇게 또 덧붙인다.
‘근데 도둑은 아니라서 여기 3000 가지세요.’
24-3. 드미트리의 상상 시퀀스 3: 카체리나가 또 이렇게 묻는다.
‘근데 돈은 어디 있나요?’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바리안트: 아빠(표도르 카라마조프)한테서 돈을 뜯어내서 3000을 카체리나한테 주는 거다.
이 작품은 분명함이라는 것이 없습니다만, 나는 그중에서 일부를 분명하게 픽스하고 ‘유클리드적인 전개’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은 위의 내용들은 나중에 가서는 반박되거나 그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찾아지는 것들입니다.
드미트리-대위의 딸
작품에서 하는 방식으로 대립쌍으로 모델링하여 이해하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델 1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드미트리-대위의 딸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드미트리는 이 관계에서 그럭저럭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카체리나가 나타났습니다.
7번까지를 드미트리의 입장에서 모델링해본다면 이렇습니다.
드미트리-카체리나 (7번까지)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같은 방식으로 11-1과 11-2를 모델링해보겠습니다.
11-1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11-1에서 드미트리는 상대방이 곧바로 자신을 버릴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11-2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11-1과 11-2를 생각한 뒤 드미트리는 카체리나를 증오에 휩싸여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제가 추측해본다면, 정욕을 채웠을 때에 대립쌍의 형세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어야 드미트리의 마음에 드는 형세가 되는 걸까요?
제가 드미트리의 입장에서 한번 가설을 세워보겠습니다.
드미트리는 카체리나와 만남이 있은 후 11-2 시점에서 드미트리-대위의 딸 관계를 소급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델 2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드미트리-대위의 딸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이때, 드미트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 합이 많은 것이 좋은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그 모델을 갖고 11-1과 11-2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1-1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11-2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두 가지 상태 모두 합이 0이거나 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가 많아야 좋은 관계일 것이다’는 꽤 그럴듯한 가설이 됩니다.
이 모델을 갖고 15번의 형세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5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이때 드미트리는 자살충동을 느끼고 그것은 황홀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까 드미트리-대위의 딸과 마찬가지로 15번에서는 똑같이 +가 3개인데, 왜 자살충동이 느껴질 만큼 황홀감이 느껴졌겠습니까?
그렇다면 단순히 (+)의 개수로 비교하는 모델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가설을 더 생각하겠습니다.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이 중요한 대립쌍이며 그것을 포함했어야 한다고요.
대위의 딸과 카체리나의 차이는 드미트리가 상대방을 사랑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요.
모델 3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드미트리-대위의 딸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여기에서는 드미트리가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이 좋습니다.
하지만 드미트리 그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위의 딸과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였지만, 자살충동이 들 만큼 황홀감이 느껴지지 않았구나! 라고 드미트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11-1, 11-2, 15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겠습니다.
11-1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11-2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12번에서 드미트리는 그 상태에서 자신이 강렬한 증오를 갖고 카체리나를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드미트리가 상대방을 증오했다고 가정한다면 테이블은 어떻게 될까요?
모델 3-1. 드미트리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
11-1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11-2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그렇다면 11-1의 경우에는 모든 (+)를 얻고, 11-2에도 꽤 많은 (+)를 얻습니다.
물론, 이것은 드미트리가 상대를 증오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일입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대로,
‘불멸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렇습니다.
15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이때 드미트리는 황홀감을 얻지요.
그렇다면 사실은 모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황홀감을 느낀 이유는 단순히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는 상태를 상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가중치는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고, 또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다시 모델을 수정해보겠습니다.
모델 4
드미트리-대위의 딸
[[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
(-)
11-1
[[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
(-)
11-2
[[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
(-)
15
[[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
(+)
]]
(?)
그렇다면 다른 모든 것에서는 확실히 (-)이지만, 15번에서는 최소한 (?)인 것입니다.
이반이 들어오면
이반이 오고 나서는 드미트리가 꽤 이상해집니다.
카체리나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덕행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립쌍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기존의 모델은
카체리나와 이어짐 ↔ 카체리나와 이어지지 않음
카체리나가 자신을 사랑함 ↔ 사랑하지 않음
같은 형세로 설명했는데, 그건 사실은 두 사람만 있었을 때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반이 카체리나를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두 가지의 갈래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가 이반을 사랑함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가 이반을 사랑하지 않음
둘은 드미트리에게 전혀 같은 상태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가 이반을 사랑함’
상태라면, 그것은 자신의 ‘빈대의 욕망’을 심하게 훼손하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 상대가 이반을 사랑하지 않음’
상태에서는 자신의 ‘빈대의 욕망’을 훼손시키지는 않되 또 다른 대립쌍이 설명을 위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드미트리가
‘차라리 카체리나와 이반이 이어지는 게 낫다’
라고 생각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카체리나가 나를 사랑함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며, 카체리나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은 나의 벌레의 정욕을 훼손합니다.
드미트리는 나중에
“카체리나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나를 구원하는 고결한 여자라는 자기 덕행을 사랑하는 거다.”
라고 말합니다.
결국에는 대립쌍이 좌우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범주가 생기고 모델이 이상해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반이 오고 난 다음의 형세를 기존의 모델링으로 표현한다면,
[[
정욕을 채움 ??? 정욕을 안 채움 (???)
자신이 명예로운 행동을 함 < 명예롭지 않은 행동을 함
(상대가 자신보다 백만 배는 고결함)
(???)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 <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음
(나는 그루셴카를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함 ???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
(상대는 자신의 덕행을 사랑하는 것임)
(??)
상대와 이어짐 < 상대와 이어지지 않음
(상대는 이반과 이어져야 할 것 같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