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국 분이세요? 와, 저 진짜 한국 너무 좋아해요! 솔직히 미국보다 훨씬 제대로 된 사회라고 생각해요.
K: 네. 한국인입니다.
A: 진짜요? 저 언젠가 한국에서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요. 사람들도 예의 바르고, 밤에 혼자 걸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고. 미국은 안 그렇거든요.
K: 알겠습니다. 계획이 있으세요?
A: 일단 서울에서 몇 달 살면서 한국어 좀 더 하고요. 괜찮으면 취업이나 대학원까지 볼까 해요. 아직 막 구체적인 건 아닌데.
K: 그렇군요. 그건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서 도움을 주기가 어렵네요. 비자 취업 어쩌고 같은 건 나도 잘 모르니까요. 근데 이런 건 있었어요. 전 홍대에 잉글리시 카페에서 영어를 배운 적 있는데요. 한 달에 30만 원 내고요. 거기서 외국인들이 한국인이랑 1:1로 40분씩 대화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공짜로 일하고 있더라고요. 대신 거기서 제공하는 숙소를 공짜로 썼대요. 자기들 나라에서 무슨 배너 광고 같은 걸 보고 왔다는군요.
A: 잠깐만요, 숙소를 공짜로 준다고요? 그냥 앉아서 영어로 얘기만 해주면?
K: 네. 그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완전히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요. 일주일 내내 일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놀고 싶으면 클럽 가고, 남자 만나고, 하고 싶은 대로 했겠죠 뭐. 숙소를 제공해준다고해서 개빡세게 일하는 상황은 별로 말이 안 되니까요.
A: 나쁘지 않은데요. 월세만 안 나가도 어디예요. 몇 달이면 여기가 저한테 맞는지 아는 데는 충분하고요. 돈을 받지 않으니까 부담스럽지도 않고.
K: 네. 외국인들한테는 한국어학당이 마치 유일한 선택지고, 그게 대단한 취업 포트폴리오로 여겨지는 것 같은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에서 무슨 기준으로 뽑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한국어학당은 대학도 아니고, 별로 카운트 안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냥 외국인이 본국에서 실제 한국어 수준을 올리면서 자기 커리어를 좀 더 국제사회 규격에 맞게 맞추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일 것 같아요. 한국은 회계사, 변호사 같은것들, 일명 ‘사짜직업’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런 사짜직업이 한국에서 되는 난이도와 외국에서 되는 난이도가 다를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노력 대비 효율이 높은 직군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있는 셈이죠.
A: 어학당이 도움이 안 돼요? 저는 그거 다니면 취업할 때 가산점 같은 게 붙는 줄 알았는데. 그럼 미국에서 먼저 자격증 따고 한국어는 따로 하라는 거예요?
K: 전 그렇게 생각해요. 또 다른 중요 자본은 진짜 믿을 만하고 그럴듯한 예비 남편을 찾는 거죠. 1990년대생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남성비율이 정말 비정상적으로 높아요. 대략 남자 110명당 100명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이 그 시장에 진입한다면 대단한 상대적 우위를 단번에 얻는 셈이에요.
A: 잠깐, 남편이 자본이에요? 성비 얘기는 처음 듣긴 하는데... 표현이 좀. 어쨌든 저한테 이득이라는거죠?
K: 네. 꼭 결혼할 필요도 없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사귀다 헤어져도 괜찮죠. 한국에서는 보통 30대 초반이 결혼하는 남자의 적령기로 보는데, 20대 중반 남성이라면 당신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경제적, 언어교육적 이점을 받고, 그쪽에서도 외국인과 사귀는 경험을 받는 호혜를 받으니, 당신을 애초부터 가치가 없는 글러먹은 인간으로 잠재적으로 평가할 인간은 적을 거예요. 최소한 연애 시장에서는.
A: 그렇게 계산해서 사람 만나는 건 좀 옳지 않다고 느껴져요. 뭐, 서로 손해 볼 거 없다는 얘기인 건 알겠는데.
K: 오, 연애든 결혼이든 자본으로 계산되는 게 한국 표준입니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A: 한국이 좋다고 해서 한국에서 하는 걸 다 좋아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K: 그럼 한국을 좋아하면서 싫어하시는 거네요? 아까는 한국이 훨씬 발전된 곳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A: 그거랑 이거는 다른 얘기죠.
K: 그럼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관행을 발견할 때마다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에서 점점 멀어질 텐데요? 어떡하죠? 전라도 ‘신안 섬노예사건’은? 충주 ‘정신봉 사건’은? 직장 내 갑질 문화는? 남녀 갈등문제는? 전부 부딪힐 때마다 ‘이건 마음에 안 들어도 한국은 내 마음에 들어’, 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실 건가요?
A: ...그중에 두 개는 뭔지도 모르겠는데요. 네, 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좋아한 게 진짜 한국이긴 했나 싶어지겠죠. 근데 그건 어디 살아도 똑같지 않아요?
K: 오. 그래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근데 어쨌든 지금 당장은 연애시장에서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한국식 사고방식에 동화되기 싫으시다는 거죠?
A: 네. 지금은요. 거기 다들 그렇게 한다고 저까지 그럴 이유는 없잖아요.
K: 그렇군요. 사실은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많아요. 미국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는 인간도 많을 거예요. 당신의 연애관에 복종하면서도, 당신에게 딱 맞는 조건을 제공하고, 외모도 그럴듯하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두뇌가 영민하며, 당신의 자율성을 해치지도 않고, 어떤 경우에도 당신을 지지할 한국인이 어딘가엔 있을 거라고 믿으세요. 세상에는 불가능은 없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던가요?
A: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저 한국인 찾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만나보고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죠.
K: 그러니까요. 어떤지를 봐야겠죠. 그래야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 없으면서도 감히 한국식 사고방식을 강요하는지, 제공할 것이 있는지, 제공하니까 그 강요가 참을 만한지 판단하게 될 테니까요.
A: 아니요. 잘해준다고 선 넘는 게 괜찮아지진 않죠.
K: 오. 그 사고방식은 미국식 사고방식인가요? 당신의 사고방식인가요?
A: 둘 다 영향을 받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K: 그럼 미국식 사고방식에 대해서 선망할 인간들은 꽤 많을 텐데, 당신은 아직 그 인간들에게 인지조차 되지 않았으니, 당신의 사고방식을 일일이 알려주려면 꽤 귀찮은 일이 되겠는걸요? 그냥 미국식이라고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쨌든 미국인이기는 하잖아요?
A: 그러면 사람들이 저한테 미국에 대한 자기 환상을 갖다 붙일 텐데요. 그게 더 귀찮죠.
K: 오 그래요. 귀찮아지겠죠. 생각해보니 제 알 바는 아니네요. 그럼 잘 해보세요.
A: 네, 그래도 꽤 흥미로운 얘기였어요.
